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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명상, 소아환자 보호자 불안 완화에 탁월한 효과 주목!

가상현실 명상이 아이들의 입원 중 보호자 불안 완화에 효과…특히 스페인어 사용자의 반응이 더 뛰어났다

현대 병원에서 환자 중심 치료(Patient-Centered Care)는 필수가 되고 있지만, 환자의 가족과 보호자 역시 치료 여정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은 때론 간과되기 쉽습니다. 특히 소아 병동에서는 부모나 보호자들이 아이의 건강에 전념하는 동시에 극심한 정서적 긴장을 겪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의과대학이 주도한 흥미로운 연구가 그 해답의 하나로 ‘가상현실(VR) 명상’을 제시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보호자 불안, 아이의 회복에도 영향 준다

연구를 이끈 토마스 카루소(Thomas Caruso) 박사는 “아이들의 건강 문제가 있을 때 부모가 느끼는 압박감은 매우 큽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환자 중심의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보호자들의 정서적 고통은 종종 무시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자료에 따르면 보호자의 스트레스는 입원한 아이들의 통증과 불안 수준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VR 명상, 단 6분으로 불안을 눈에 띄게 줄이다

연구는 2023년 6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루실 패커드 아동병원(Lucile Packard Children’s Hospital)에서 진행되었으며, 총 200명의 어린이 입원 환자의 보호자가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는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뉘었고, 한 그룹(101명)은 일반적인 휴식 활동(스마트폰 사용, 대화 등)을 제공받았으며, 다른 그룹은 약 6분간 VR 기기를 활용한 명상 영상을 체험했습니다. 명상 영상은 ‘오로라(Aurora)’라는 제목의 자연 경관과 호흡 안내 음성이 포함된 콘텐츠로, 사용자의 언어 선호에 따라 영어 또는 스페인어로 제공되었습니다.

측정 도구와 결과: 수치로 드러난 변화

연구진은 참가자의 불안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세 가지 평가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1. 시각적 불안 척도(Visual Analog Scale for Anxiety, VAS-A): 0부터 100까지 숫자 스케일을 제공해 자가 보고 방식으로 현재의 불안 수준을 평가.
2. 상태-특성 불안 목록(State-Trait Anxiety Inventory, STAI): 정적 불안(특성)과 현재 상황에서의 불안(상태)을 분리하여 평가.
3. 만족도 설문조사: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와 다시 사용하고 싶은 의지를 평가.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상현실 명상 그룹은 VAS-A 기준 평균 불안 점수가 약 53점에서 31점으로, 약 22점의 감축을 보였고, 반면 일반 그룹은 52점에서 44점으로 8점 감소에 그쳤습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었으며, STAI 결과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스페인어 사용자의 반응은 두드러졌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언어 그룹 간 차이였습니다. 영어 사용자와 스페인어 사용자 모두 불안 감소를 경험했지만, 스페인어 사용자는 평균 불안 점수가 41점에서 21점까지 낮아졌습니다. 같은 언어 그룹의 일반 치료 사용자들은 평균적으로 41점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스페인어 사용자가 VR 명상의 혜택을 더 크게 경험했음을 뜻하며, 의료 환경 내에서의 언어 격차와 정신 건강 자원의 부족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를 시사합니다.

왜 스페인어 사용자는 더 큰 효과를 얻었을까?

연구팀은 이러한 언어 격차에서 비롯된 “지원의 간극이 조용히 만들어온 정서적 결핍”이 해소되면서 강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해석합니다. 미국 내에서 스페인어 사용자 대부분은 이민자이거나 저소득층으로, 전문적인 정신 건강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문화적, 언어적으로 적합한 콘텐츠 제공"은 단순히 번역을 넘어서 치료의 효과를 결정짓는 복합 요소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기술과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

이번 연구는 가상현실이 단순한 오락 도구가 아닌 정신 건강 치료의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근 World Health Organization(WHO)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정서적 고통과 불안장애가 25% 이상 증가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비약물적 접근법’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VR은 비교적 저렴하고, 제약도 적으며, 언어 장벽까지 줄일 수 있는 미래 지향 기술이자 치료 도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확대 적용되고 있는 VR 명상

스탠포드 대학교의 챠리엇 프로그램(Chariot Program; https://chariot.stanford.edu/)은 이미 이 기술을 병원 내 정규 서비스로 도입했으며, 소아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위한 정서적 치유 솔루션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오로라’ 외에도 세 가지 언어로 제공되는 콘텐츠를 추가 제작 중이며, 향후 병원 외 일반 커뮤니티 센터에서도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계와 향후 연구 과제

비록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긴 했지만, 연구는 몇 가지 제한점을 가집니다. 첫째, 단일 기관에서만 시행된 시험임으로 타 병원이나 문화권, 언어권에서 동일한 효과가 나타날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둘째, VR 명상은 단기 효과만 측정되었으므로 장기적 효용성(예: 지속적 불안 완화, PTSD 예방 등)은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장비 사용에 따른 신체 증상(멀미, 눈의 피로 등)이 소수 발생한 만큼, 향후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감정을 돌보는 기술, 휴먼케어의 진화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보건 의료 환경에서도 보호자 중심 치료 개념은 점차 널리 인식되고 있으며, 종합병원 및 권역별 소아센터 등에서도 정서적 보조 수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VR 기반 치료 컨텐츠는 ‘인지 장애 재활’, ‘치매 초기 예방’, ‘산모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흐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데이터로, 보호자 중심의 병원 설계 및 의료 인식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맺으며: 감정도 치료가 필요하다

의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육체적 치료 못지않게 정서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보호자도 환자이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이번 연구는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 상징적인 성과입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병원과 지역 커뮤니티에서 신체와 마음을 모두 살피는 ‘전인적 케어(Holistic Care)’를 기반으로 가상현실, 명상 같은 기술이 쓰이기를 기대해봅니다. VR 명상은 단지 잠시의 위로를 넘어, 의료 현장에서의 또 하나의 치료법으로 자리잡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