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 기술로 중독 재발을 막는다: 중독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
매년 수천만 명이 약물이나 알코올과의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독 회복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간단한 여정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지속되어야 하는 도전적인 싸움입니다. 특히 회복 중인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자극들—예를 들어, 약물 광고, 음주가 빈번한 모임, 또는 과거 중독 시절과 연결된 장소 등—은 재발 가능성을 높이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최근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의 사회복지학 교수 홀리 마토(Holly Matto)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러한 어려움을 넘고자 첨단 기술을 활용한 획기적인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술을 기반으로 한 ‘회복 큐(Recovery Cue)’ 전략입니다. 이 접근 방식은 중독 회복 과정에서 감정 조절을 돕고, 충동을 최소화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심리적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합니다.
‘회복 큐’란 무엇인가?
‘회복 큐(Recovery Cue)’는 재발 위험에 직면했을 때 개인이 감정적·인지적으로 안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감각적 자극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영상, 평화로운 자연 풍경,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음성, 또는 종교적 상징 등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요소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큐들은 개인의 심리적 균형을 유지시키고 유혹에 휘둘리지 않도록 돕는 ‘정서적 닻(anchor)’ 역할을 합니다.
VR을 활용한 회복 큐 체험
기존의 심리치료, 상담, 약물치료는 필요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VR 기술을 활용하면, 사용자는 언제 어디서든 몰입형 감각 환경 속에서 중독 유혹 상황을 가상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회복 큐를 작동시켜, 유혹에 맞서는 연습을 반복할 수 있게 됩니다.
마토 교수의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친숙하고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자극들이 포함된 VR 시나리오를 제공합니다. 예컨대 평소 명상하며 떠올리는 파도 소리,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담긴 사진, 또는 중독 치료 과정에서 받은 12단계 프로그램 1년 칩 등이 포함된 가상환경입니다. 이런 익숙한 요소들은 뇌에서 안정감을 유도하는 ‘항불안 반응’을 유발함으로써 충동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신경과학적 배경: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중독은 단순한 심리적 의존을 넘어, 뇌의 보상 시스템에 구조적인 변화를 초래합니다. 특히 도파민 분비 경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며, 이를 자극하는 환경적 요인(큐)을 접할 때마다 중독 욕구가 폭발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보다 충동적 행동이 앞서기 쉽습니다.
VR 기반 회복 큐는 이러한 뇌의 취약점을 보완합니다.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자극에 대한 반응을 ‘재학습(Re-conditioning)’ 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고전적 조건화 이론과 유사하며, ‘트리거(Trigger)’가 있었던 상황을 이제는 새로운 긍정적 감정과 연결하게끔 훈련합니다.
실시간 감정 조절 그리고 생리적 효과
실제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VR 회복 큐 활용 후 눈에 띄는 생리적 지표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심박수가 안정화되고, 손바닥 땀 분비가 감소하며, ‘자율신경계 항진’ 상태에서 벗어나 편안함과 자기통제력을 느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치료나 약물 복용보다 즉각적으로 인지와 감정을 안정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재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촉발 요인에 직면했을 때, 그 짧은 ‘5분 간의 골든타임’에 VR 회복 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셀프와 행동 변화 추구
마토 교수의 연구팀은 현재 두 번째 단계로, 참여자 각자가 가상환경 안에서 ‘디지털 베스트 셀프(Digital Best Self)’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디지털 베스트 셀프란 중독 극복 후 본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상적인 존재상을 의미하며, 이를 구현하고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행동 변화의 내면화를 유도합니다.
이는 행동경제학의 ‘정체성 프라이밍(Identity Priming)’ 개념과 유사하며, 자기효능감과 동기 부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반복된 노출과 체험은 결국 현실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VR 치료의 확장 가능성: 맞춤형 바이오피드백
향후 이 기술은 더욱 정교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예를 들어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결합하여 사용자의 심박수나 피부 전도도(Skin Conductance)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에 따른 가상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바이오피드백 기반 맞춤형 치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중독 뿐 아니라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면증 등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의 새로운 치료 플랫폼으로 응용될 수 있습니다.
다학제 연구팀의 협력과 향후 전망
이번 연구는 사회복지 분야만이 아닌, 생명공학(Bioengineering), 신경과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학문 간의 연계를 바탕으로 탄생했습니다. 공동 연구자로는 패드마나반 세샤이어(Padmanabhan Seshaiyer) 교수와 나탈리아 페이쇼토(Nathalia Peixoto) 부교수, 바이오엔지니어 박사과정생 브라이스 던(Bryce Dunn) 등이 함께 했습니다.
이 논문은 미국 사회복지학 저널 『Families in Society』 (2025년 6월호)에 게재되었으며, 향후 보다 많은 임상시험과 지역사회 적용 프로젝트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마무리: 기술이 만드는 희망
중독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경망, 감정, 환경 자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병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 또한 단순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상현실 기반 회복 큐는 바로 이 복잡한 병리구조에 대응할 수 있는 정밀한 도구로, 개인의 기억, 감정, 반응을 조정하는 데 있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누구에게나 맞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능성을 지닙니다. 사람마다 회복의 의미는 다르지만, 기술은 그 각각의 회복 여정에 함께할 수 있는 유연성과 확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중독 치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을 VR 기반 중재(intervention)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 관련 기사 원문 보기: Leveraging Virtual Reality to Combat Substance Use Relapse
📚 학술 논문 보기: SAGE Journals DOI 10.1177/1044389425133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