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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 물범의 시각 비밀: 인공지능을 위한 혁신적 내비게이션 기술!

바닷물 속 아틀란티스의 항해사: 점묘 영상으로 방향을 읽는 물범의 시각

하버 물범(Harbor seal, 학명: Phoca vitulina)은 탁한 바닷물 속을 헤엄치며 자유롭게 나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해양 포유류입니다. 물속 시야가 흐려지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방향을 파악하는 것일까요? 최근 독일 로스토크 대학교(Frederike Hanke 연구팀)의 연구는 이러한 의문을 풀어주는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며, 바닷물 속에서도 물범이 시각적인 정보, 즉 ‘광류(optic flow)’를 이용해 방향을 식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광류(optic flow)란 무엇인가?

‘광류(optic flow)’는 생물이나 로봇이 주변을 움직일 때 발생하는 시각적 움직임의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며 길을 달릴 때 우리가 보는 시야에 물체들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이 움직임의 패턴은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몇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인간과 일부 포유류, 곤충은 이미 광류를 이용해 이동 방향을 파악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바다라는 특수하고 난해한 환경 속에서 물범이 어떻게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인지하는지를 고도로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례입니다.

실험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로스토크 대학교 프레데리케 한케(Frederike Hanke) 박사와 연구진은 총 세 마리의 하버 물범, 닉(Nick), 루카(Luca), 미로(Miro)에게 특별한 ‘게이밍 시뮬레이션’을 제시했습니다. 이 실험은 실제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하고, 물범이 시각 정보만으로 방향을 얼마나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세 가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물속에서 입자들이 전면으로 흘러오는 장면을 구현했고, 두 번째는 해저면을 지나치는 듯한 시야, 세 번째는 수면 위 장면이 물범의 머리 위로 흐르는 장면이었습니다. 각각의 시뮬레이션은 물속에서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광류 상황을 재현한 것입니다.

물범들은 이 화면을 바라보는 동시에 양쪽에 설치된 빨간 공을 터치해야 하는데, 이는 왼쪽 또는 오른쪽 방향으로 자신이 이동 중이라고 판단한 방향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보상으로 맛있는 작은 청어(sprat)를 제공받았습니다.

게임에 참여한 물범들의 학습과 행동

닉과 루카는 이미 이전 연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게이밍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시각 정보 해석과 의사 결정에 비교적 능숙하게 적응했습니다. 미로는 이 실험에 처음 참여하는 신참이었지만, 학습 능력이 높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실험은 시뮬레이션에 따라 물체들이 질주하는 각도가 다르게 조정된 6가지 시나리오를 포함했고, 방향성은 좌우로 2도에서 22도까지 다양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연구진은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해 물범이 선택한 방향과 실제 시뮬레이션의 방향을 대조하며 데이터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물범은 정말 방향을 인식했는가?

분석 결과, 물범들은 상당히 정확하게 시야 속 입자 패턴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방향을 인식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동물이다 보니 모든 실험에서 완벽했던 것은 아니며, 일부 오차나 실수 역시 기록되었습니다. 한케 박사는 "이들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집중력 저하나 동기 부족으로 실수하기도 한다"며 유쾌하게 설명했습니다.

도전은 계속된다: 거리 감지까지

이번 연구를 통해 하버 물범이 ‘광류’를 바탕으로 자신이 이동하는 방향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다음 연구는 조금 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바로,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시각적 정보로 인식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는 해양 생물의 내비게이션 능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며, 향후 해양 생물의 행동 연구나 심해 탐사, 자율 수중 로봇(Navigation AUV) 등의 개발에도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물범의 감각 총동원: 시각 외에도 중요한 ‘감각수염’

물범은 시각 외에도 다른 감각을 활용해 바다를 탐색합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기능은 바로 감각수염(vibrissae)입니다. 이 수염은 수중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고감도 촉각 센서와 같아서 수중에서 먹이의 움직임이나 주변 물체를 감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특히 수염은 조류와 수류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도 활용되어 어두운 환경에서 시각 대신 공간을 인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용적 확장: 해양 로봇 및 인공지능 항법 시스템으로의 적용

이와 같은 물범의 시각 기반 내비게이션 연구는 인간의 기술 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해양 탐사용 자율 로봇(AUV)는 탁한 바다 속에서 시야가 제한되는 환경 문제를 겪는데, 물범처럼 미세한 입자의 흐름을 분석해 이동 방향을 추정하는 기술은 ‘생체모사(bio-mimicry)’로서 로봇의 항법 시스템 개선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일부 수중 드론 개발사에서는 수중 카메라를 활용하여 광류 분석을 통해 내비게이션 정보를 축적하는 실험을 시행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물범의 ‘게이밍 학습법’을 기반으로 하는 AI 훈련 커리큘럼도 타 로봇 설계에 도입될 수 있습니다.

생물학, 인공지능, 해양 과학의 만남

하버 물범이라는 작은 생물이 제공한 시각-내비게이션 연구는 생물학, 인공지능, 해양 공학의 융합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동물의 감각 이해를 넘어, 기술적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특히 시각 기반 자율항행, 유체역학 분석, AI 기반 해양 센서 등에서도 물범의 행동 원리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결론: 흐림 속의 항로, 명확해진 방향

우리는 일반적으로 탁하거나 시야가 흐린 환경에서는 방향을 상실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버 물범은 흐린 물속에서도, 단지 점과 점이 흘러가는 시각 패턴만으로도 방향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공간 감지 능력을 가지는 생물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해양 환경에서의 적응, 생존 그리고 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미래 과학과 산업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참고 문헌 및 관련 링크:
1. Sandow, L. M. et al. (2025).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 DOI: 10.1242/jeb.250168
3. The Company of Biologists